무늬오징어가 먹물을 뿌린 직후 주변 무리가 물러났더라도 그 포인트의 낚시가 끝났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잠시 뒤 같은 자리에서 무리가 다시 보일 수 있고, 재공략 여부는 그때의 위치와 에기 반응을 확인해 정할 수 있습니다.
저는 가을 초반 연화도에서 무리가 뒤로 빠졌다가 잠시 뒤 같은 자리에 다시 모여 있는 모습을 봤습니다. 한편 산란기에는 걸린 암컷으로 보이는 개체를 수컷으로 보이는 개체가 가까이 따라오는 장면도 경험했습니다. 두 장면을 함께 생각하면, 먹물 이후에는 주변 개체가 실제로 어떻게 움직였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해집니다.
1. 연화도에서 물러났다가 다시 보인 무리

가을 초반, 연화도에서 낮 에깅을 하던 중 밧줄 아래에 감자 크기 정도의 무늬오징어들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쪽으로 에기를 던져 감아오자 무리에서 두 마리가 벗어나 따라왔고, 에기를 무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바늘에 걸리는 순간 먹물이 분사됐습니다. 그 직후 밧줄 아래에 있던 무리 전체가 뒤로 쭉 물러나는 모습을 봤습니다.
당시에는 먹물에 반응해 함께 있던 개체들이 경계하며 자리를 피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포인트를 둘러보고 5~10분 정도 뒤에 돌아오니, 같은 밧줄 아래에 무리가 다시 모여 있었습니다. 제 눈에는 조금 전 물러났던 무리가 돌아온 것처럼 보였습니다. 개체를 구별해 추적한 것은 아니므로 모두 같은 개체였는지까지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같은 자리에 무리가 다시 보였기 때문에, 먹물 한 번으로 그 자리를 바로 포기할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 먹물의 방어 기능과 무리의 경계반응

먹물을 이해할 때는 먹물을 뿌린 개체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와 주변 개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나누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포식자의 공격을 방해하는 기능과 같은 종의 다른 개체에게 경계반응을 일으키는 효과는 영향을 받는 대상이 다릅니다.
Wood 등의 2010년 연구에서는 카리브해 오징어의 먹물 덩어리를 포식성 물고기와 먹이 사이에 제시하고 반응을 살폈습니다. 물고기가 먹물을 피하거나 덩어리를 무는 행동을 보이면서, 먹이를 향한 공격이 지연되는 결과가 관찰됐습니다. 이 실험은 먹물이 공격하는 상대의 행동을 바꾸어 방어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근거를 제공합니다.
주변 개체의 반응은 버뮤다해양과학연구소와 미국 조지아주립대 연구진의 2008년 논문에서 살펴봤습니다. 연구 대상은 같은 종의 먹물에 반응하는 카리브해 오징어 Sepioteuthis sepioidea였습니다.
연구에서는 먹물을 넣었을 때 몸색이나 자세를 바꾸거나 자리를 피하는 등의 반응이 관찰됐습니다. 특히 먹물을 별도의 인접한 수조에 넣어 눈으로만 볼 수 있게 했을 때도 경계반응이 나타났습니다. 먹물의 시각적 모습 자체가 위험을 판단하는 단서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결과입니다. 먹물의 화학성분이 경보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 실험만으로 확정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두 먹물 연구의 대상은 국내에서 낚는 무늬오징어와 다른 종입니다. 연화도의 무리가 물러난 장면을 이해할 배경으로 참고할 수 있지만, 국내 무늬오징어가 언제나 똑같이 반응한다고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연화도에서는 바늘에 걸리는 일과 먹물 분사가 함께 일어났습니다. 따라서 주변 무리의 이탈을 먹물 하나의 효과로 분리해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확인한 것은 바늘에 걸린 직후 먹물이 나왔고, 이어 무리가 뒤로 물러났다는 행동의 순서입니다.
3. 5~10분 뒤의 재등장이 알려준 것
연화도에서의 5~10분을 무늬오징어의 경계가 풀리는 시간으로 정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그동안 다른 포인트에 있었으므로 무리가 정확히 언제 다시 모였는지 지켜보지 못했습니다. 돌아온 순간에 무리가 있었던 것이지,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을 측정한 것은 아닙니다.
Wood 등의 2008년 연구도 자극을 제시한 뒤 1분 동안 나타난 행동을 정량화했습니다. 야외에서 몇 분을 기다려야 입질이 회복되는지 확인한 실험은 아닙니다.
또한 무리가 다시 보이는 것과 에기를 공격하는 것은 각각 확인할 일입니다. 같은 자리에 머물러도 에기에 관심을 보이지 않을 수 있으므로, 재등장만 보고 곧바로 낚시가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이 경험을 실전에 적용한다면, 무리가 물러난 구간은 잠시 쉬게 하고 다른 방향을 탐색한 뒤 다시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재방문했을 때는 개체가 있는지와 에기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확인합니다.
4. 산란기에 수컷이 따라오는 장면은 왜 다를까

산란기에는 걸린 암컷으로 보이는 개체를 수컷으로 보이는 개체가 가까이 따라오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다만 당시 먹물의 분사 여부와 위치, 뒤따르던 개체가 먹물을 보거나 그 부근을 지났는지까지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이 장면을 먹물에도 경계하지 않은 사례로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Lin 등의 2017년 연구에서는 무늬오징어류인 Sepioteuthis lessoniana 수컷의 동행과 산란 중 암컷을 지키는 행동을 관찰했습니다. 번식기의 가까운 유영을 이해할 배경이지만, 낚싯바늘에 걸린 개체를 따라오는 이유나 먹물 반응을 시험한 연구는 아닙니다.
따라오는 개체가 있다면 먹물의 유무만으로 먹이활동이나 경계 상태를 정하기보다, 그 개체가 향하는 대상과 새 에기에 대한 반응을 함께 봅니다. 산란기의 동행과 추가 개체를 공략했던 경험은 무늬오징어 한 마리를 걸면 왜 다른 개체가 따라올까?에서 자세히 다뤘습니다.
5. 먹물이 나온 위치와 다음 공략 구간을 나눈다
실전에서는 먹물이 나온 뒤 눈앞에 어떤 변화가 남았는지부터 살펴봅니다. 걸린 개체가 있다면 먼저 안정적으로 회수하고, 채비를 정리한 뒤 주변을 확인합니다. 무리의 움직임을 더 보려고 랜딩을 불필요하게 늦출 이유는 없습니다. 회수 동작과 도구 선택은 무늬오징어 에깅 랜딩 방법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다음 캐스팅을 정할 때는 먹물이 나온 곳, 무리가 마지막으로 보인 곳, 에기가 지나갈 구간을 따로 확인합니다. 세 위치가 겹치는지 떨어져 있는지를 구분하면 어느 구간의 반응을 다시 살펴볼지 정하기 쉬워집니다.
예를 들어 먼 곳에서 걸린 개체를 끌어오다가 발앞에서 먹물을 뿌렸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이때 눈으로 확인한 것은 발앞의 먹물이며, 처음 입질을 받은 먼 지점의 개체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별도로 확인해야 합니다. 발앞에 먹물이 보인다는 사실만으로 처음 공략한 구간의 가능성까지 함께 지울 근거는 부족합니다.
반면 무리가 모여 있는 자리에서 먹물이 나왔고 그 무리의 이탈까지 직접 보였다면, 해당 구간의 투입을 잠시 멈추고 주변을 살펴볼 이유가 생깁니다. 다음 공략은 먹물까지의 거리보다 직접 확인한 개체의 위치와 움직임을 기준으로 정합니다.
먹물의 검은 흔적이 보이는 범위를 그대로 경계반응의 범위로 정할 수도 없습니다. 앞서 소개한 두 연구는 야외 낚시터에서 몇 m까지 영향을 받는지 제시한 자료가 아닙니다. 따라서 흔적의 안팎에 임의의 경계를 만들기보다는 실제로 보인 개체의 위치와 움직임을 다음 공략의 출발점으로 삼는 편이 타당합니다.
6. 무리가 보일 때는 남은 위치와 반응을 확인한다

먹물 이후에도 일부 개체가 남아 있다면 그 위치와 에기에 대한 반응을 확인합니다. 개체가 계속 머무는지, 새로 들어간 에기로 몸을 돌리는지, 가까워지는지, 실제로 안는지까지 이어서 보는 것입니다.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적극적으로 먹이를 쫓는 상태라고 정하지는 않습니다.
무리가 한꺼번에 물러났다면 마지막으로 보인 방향을 기억해두고, 같은 좁은 구간에 연속해서 에기를 넣는 동작을 잠시 멈출 수 있습니다. 곧바로 여러 색과 크기로 바꿔도, 개체가 이미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면 무엇에 반응하지 않는지 비교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때는 밧줄이나 계류시설에 라인이 걸리지 않는 범위에서 다른 방향을 탐색하거나 가까운 다른 포인트를 확인한 뒤 돌아와볼 수 있습니다.
다시 확인했을 때 무리가 보이면, 그때 보이는 위치를 기준으로 공략을 시작합니다. 처음 모여 있던 곳과 지금 위치가 달라졌다면 캐스팅 방향도 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금 전 잡혔던 경로만 반복해서는 현재 무리가 머무는 곳과 에기가 지나가는 곳이 어긋날 수 있습니다.
에기에 접근하는 모습이 확인됐는데도 공격이 이어지지 않을 때에는 동작이나 보여주는 시간을 조정하며 반응을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이때 방향·크기·침강 타입을 한꺼번에 바꾸면 어떤 변화 뒤에 반응이 달라졌는지 알기 어려우므로, 확인할 요소를 하나씩 좁혀가는 편이 관찰에 도움이 됩니다.
이런 조정은 현재 개체의 반응을 확인하는 방법이며, 먹물에 대한 경계를 없애는 효과가 검증된 기법은 아닙니다.
7. 무리가 보이지 않을 때는 이동 판단의 근거를 넓힌다
연화도에서 본 행동의 순서를 야간이나 물색이 흐린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습니다. 먹물 분사는 봤더라도 주변 개체가 있었는지, 실제로 물러났는지까지 확인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조건에서 먹물 이후 입질이 없었다면, 우선 같은 자리에서 반응이 끊겼다는 사실을 기록하는 정도가 적절합니다. 주변 무리가 모두 달아났다고 덧붙일 근거는 부족합니다. 그 전에 반응이 이어졌는지, 한 번의 입질만 있었는지에 따라서도 이후의 무반응을 해석할 여지가 달라집니다.
이동을 결정할 때는 먹물이 나온 지점과 주변 다른 구간의 반응을 함께 봅니다. 주변에서도 반응이 없고 다시 확인한 원래 자리에서도 변화가 없다면, 다음 후보지로 탐색 범위를 옮길 수 있습니다.
추가로 잡혔다고 조금 전 경계했던 개체가 다시 공격했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 자리에서 낚시를 이어갈 반응이 확인됐다는 정보는 얻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추가 입질이 없었다면, 그 결과를 남기되 먹물의 영향이 얼마나 지속됐는지까지 계산하지는 않습니다.
조행기에는 먹물 직후 직접 본 행동과 이후 공략한 구간, 반응 유무를 나누어 적으면 좋습니다. 밤이라 개체의 움직임을 확인하지 못했다면 그 조건도 함께 남겨, 낮의 시각적 관찰과 구분해볼 수 있습니다.
마무리: 먹물 이후의 반응으로 다음 공략을 정한다
먹물 직후 무리가 물러났다는 사실만으로 그 포인트의 가능성을 모두 지울 필요는 없습니다. 연화도 경험은 잠시 다른 구간을 탐색한 뒤 원래 자리를 다시 확인해볼 이유가 됐습니다.
개체가 남아 있으면 위치와 에기 반응을 보고, 모두 물러났다면 해당 구간을 잠시 쉬게 한 뒤 재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변과 재방문한 자리에서도 무반응이 이어지면 다음 후보지로 탐색 범위를 옮깁니다. 대기시간을 고정하기보다 직접 확인한 변화에 맞춰 다음 공략을 정하는 방식입니다.
참고한 연구
- 버뮤다해양과학연구소·미국 조지아주립대 등 공동 연구진
Wood 등(2010), Caribbean reef squid, Sepioteuthis sepioidea, use ink as a defense against predatory French grunts, Haemulon flavolineatum. Journal of Experimental Marine Biology and Ecology, 388, 20–27.
논문 DOI · 논문 PDF - 버뮤다해양과학연구소·미국 조지아주립대 연구진
Wood 등(2008), Ink is a conspecific alarm cue in the Caribbean reef squid, Sepioteuthis sepioidea. Journal of Experimental Marine Biology and Ecology, 367, 11–16.
논문 DOI · 저자 공개 본문 - 대만 국립칭화대 연구진
Lin 등(2017), Quantitative Analysis of Dynamic Body Patterning Reveals the Grammar of Visual Signals during the Reproductive Behavior of the Oval Squid Sepioteuthis lessoniana. Frontiers in Ecology and Evolution, 5, 30.
논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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